2007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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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그동안 내가 홍대에서 인턴을 여러번 했었는데 내가 대학에 붙은 후 그 때 신세 진 여러 교수님들께 고맙다는 차원에서 같이 식사를 하시고 돌아오시는 길에 전화를 거신 듯 했다. 술 몇 잔을 하셨는지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아빠는 약간 지금 흥분했다"라 말하시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약간은 놀랐다. 그래. 그렇다. 사실은 내가 집에 붙었다고 전화를 했을 때 유일하게 큰 반응을 보였던 것도 아빠 뿐이셨다. 엄마는 약간은 졸리신 듯한 목소리로 "그래, 잘됬네. 그동안 수고했다."라고 하셨고, 하연이는 이틀 후까지 내야하는 논문 작성에 바빠 이야기를 할 겨를도 없었으며, 현우는 이미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 현우와 통화를 했을 때 "누나가 대학 되니까 어때?"라는 물음에 내 막내 동생이 "근데 그냥 우리 가족 다 담담해. 엄마가 하도 누나 될 것 같다고 해서."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고, 하연이는 이메일로 "언니 이제 맘 편하게 놀 일만 남았네"라 했다.
물론 엄마께서 집에서 저렇게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지만 나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데, 너무 기대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래봤자 뭐 내가 엄마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애써 내가 혹시 떨어졌을 때 실망을 할까 일부러 그렇게 말하시는 것 다 알았다. 엄마께선 내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으시지만 항상 난 뭐든지 다 당연히 잘해낼 것이란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얼리 원서를 제출한 후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아무것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레귤러 원서도 매일 쓰는둥 마는둥 하면서도 정신적 압박을 받을 때에도 엄마께선 요즘 뭐 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지금 동생이 처음 논문을 쓰는데 좀 어떻게 도와줄 수 없냐고 재촉을 하셨다. 솔직히 말해보자. 서운했다. 나를 항상 믿으셔서 당장 대학 문제가 코 앞에 놓인 나보다는 이제 막 적응을 하고 있는 하연이가 더 걱정이 되시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실망을 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히 얼리 준비를 할 때 내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날카로울대로 날카로워진 내 목소리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셨을 법도 하신데 한 개의 대학이 아니라 열 개가 넘는 학교의 원서를 준비하는 시기에 꼭 그렇게 보채실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도대체 왜 내가 힘든건 엄마께 인정을 못 받고 동생이 힘든 건 항상 그렇게 챙겨주시는 건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난 큰 딸이어서 약간 내버려 둔 상태로 컸고 동생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산지라 이런 일에 익숙해졌지만 사소한 일 하나하나 티는 안 내지만 마음에 두는 나로써는 그 때 역시 그저 웃으며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왜 그 시기에 내가 힘든 일을 하소연하지 못하고 남의 힘든 일에 대해 들어야 하는지.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에 내 책임도 없지는 않다. 5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부모님과 컴퓨터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충돌을 했기에, 또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로 드디어 부모님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일 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는 가족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항상 내가 어렸을 때 어린 동생들 때문에 신경을 써주지 못하셔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엄마를 더 이상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고 내게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결국은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난 한달에 한번 정도 집에서 전화가 왔을 때마다 언제나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잘 되어가고 있고 공부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으며 걱정할 것 없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되다보니 나는 집에서 항상 식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내버려 둬도 알아서 모든 것을 잘 해나갈 것이란 믿음을 한 몸에 받은 채, 나는 엄마의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하연이와의 갈등, 점점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현우 또래 아이들의 교육 문제, 또 가끔씩은 아빠와의 트러블 등의 이야기를 들어드렸고, 남자애들만 바글바글해 제대로 여자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과학고에 갓 들어가 공부, 내신, 경시, 룸메이트 모든 면에 낯설어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하연이의 화가 가득찬 푸념 내지는 불평을 미리 기숙학교에서 2년 먼저 생활해 본 선배로서 받아주었다. 또, 때때로 엄청난 욕심으로 스스로 힘들어하는 우리 현우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현우가 학교에서 있는 소소한 일들,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한 일, 요즘은 무슨 과목에서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했고, 정말정말 아주 가끔 평소에는 그런 얘기를 잘 안하시지만 알코올에 힘을 빌어 나에게 이런 저런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마음에 쓰이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하시는 아빠의 횡설수설 전화도 받기도 한다.
이렇게 항상 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물에 흠뻑 젖은 스폰지마냥 되어버려 더 이상 내 문제가 끼어 들어갈 틈이 없어져 버렸다. 물론 나는 그저 우리집 식구들의 걱정이나 힘든 일들을 그저 잠잠히 잘 들어주는 역할뿐 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나름 그 이야기들이 한 귀로 들어가 다른 귀로 빠져나간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 더 이상 내 문제를 올려둘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항상 남들에 비해 힘든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잠깐의 착각에 불과하지 사실 무의식적으로 쌓여가는 정신적 고통을 나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런히 잘 포개져 누적되가던 그것들이 결국 벽에 닿아 처음 그 장농 안에 뭔가 꽉 차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그러나 봇물이 터져나온 후에 장농 안은 깨끗이 비는 것이 아니라 찌끼가 항상 남고, 한번 한번 그렇게 터질 때마다 점점 찌끼들마저 쌓여 이젠 항상 내 숨통을 죄어온다.
부모님께는 항상 믿을 수 있는 맏딸, 동생들에게는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언니, 누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혹사시킬 수 밖에 없다. 이미 이렇게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온 탓에 더 이상 내 스스로가 변한다고 하여도 우리 가족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그런 이미지, 허상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고 지금 와서 그런 것을 일부러 깨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사실 그 사람들이 그다지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손을 뻗어 닿은 그 목표이지만 그래봤자 본전인 것이다. 거기에 조금 미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들의 실망 가득한 눈과 대면해야 하는데 난 그것이 죽기보다 싫다.
참.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친구들에게 이런 일을 털어놓아도 친구는 친구일 뿐이다. 아무리 하소연을 하고 푸념을 늘어놓아 보았자 아무 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고 괜히 내 마음만 더 공허해지기에 결국 또다시 이 문제는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 힘들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에 다 서운하고 상처받고 너무 힘들다. 아, 이제 생각해보니 Three Reasons I Will Never Marry 이딴거 다 필요없었다. 나의 완벽주의와 내가 우리 가족에게 가지고 있는 집착, 콤플렉스 때문에 결국 이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거부를 한 것이었다.
물론 엄마께서 집에서 저렇게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지만 나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데, 너무 기대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래봤자 뭐 내가 엄마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애써 내가 혹시 떨어졌을 때 실망을 할까 일부러 그렇게 말하시는 것 다 알았다. 엄마께선 내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으시지만 항상 난 뭐든지 다 당연히 잘해낼 것이란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얼리 원서를 제출한 후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아무것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레귤러 원서도 매일 쓰는둥 마는둥 하면서도 정신적 압박을 받을 때에도 엄마께선 요즘 뭐 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지금 동생이 처음 논문을 쓰는데 좀 어떻게 도와줄 수 없냐고 재촉을 하셨다. 솔직히 말해보자. 서운했다. 나를 항상 믿으셔서 당장 대학 문제가 코 앞에 놓인 나보다는 이제 막 적응을 하고 있는 하연이가 더 걱정이 되시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실망을 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히 얼리 준비를 할 때 내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날카로울대로 날카로워진 내 목소리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셨을 법도 하신데 한 개의 대학이 아니라 열 개가 넘는 학교의 원서를 준비하는 시기에 꼭 그렇게 보채실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도대체 왜 내가 힘든건 엄마께 인정을 못 받고 동생이 힘든 건 항상 그렇게 챙겨주시는 건지. 어렸을 때부터 항상 난 큰 딸이어서 약간 내버려 둔 상태로 컸고 동생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산지라 이런 일에 익숙해졌지만 사소한 일 하나하나 티는 안 내지만 마음에 두는 나로써는 그 때 역시 그저 웃으며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왜 그 시기에 내가 힘든 일을 하소연하지 못하고 남의 힘든 일에 대해 들어야 하는지.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에 내 책임도 없지는 않다. 5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하루가 멀다하고 부모님과 컴퓨터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충돌을 했기에, 또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로 드디어 부모님도 결국은 나약한 인간일 뿐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는 가족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항상 내가 어렸을 때 어린 동생들 때문에 신경을 써주지 못하셔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엄마를 더 이상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고 내게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결국은 나 혼자 알아서 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난 한달에 한번 정도 집에서 전화가 왔을 때마다 언제나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잘 되어가고 있고 공부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으며 걱정할 것 없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렇게 되다보니 나는 집에서 항상 식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내버려 둬도 알아서 모든 것을 잘 해나갈 것이란 믿음을 한 몸에 받은 채, 나는 엄마의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하연이와의 갈등, 점점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현우 또래 아이들의 교육 문제, 또 가끔씩은 아빠와의 트러블 등의 이야기를 들어드렸고, 남자애들만 바글바글해 제대로 여자애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과학고에 갓 들어가 공부, 내신, 경시, 룸메이트 모든 면에 낯설어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하연이의 화가 가득찬 푸념 내지는 불평을 미리 기숙학교에서 2년 먼저 생활해 본 선배로서 받아주었다. 또, 때때로 엄청난 욕심으로 스스로 힘들어하는 우리 현우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현우가 학교에서 있는 소소한 일들, 친구들과 축구 경기를 한 일, 요즘은 무슨 과목에서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했고, 정말정말 아주 가끔 평소에는 그런 얘기를 잘 안하시지만 알코올에 힘을 빌어 나에게 이런 저런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마음에 쓰이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하시는 아빠의 횡설수설 전화도 받기도 한다.
이렇게 항상 남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물에 흠뻑 젖은 스폰지마냥 되어버려 더 이상 내 문제가 끼어 들어갈 틈이 없어져 버렸다. 물론 나는 그저 우리집 식구들의 걱정이나 힘든 일들을 그저 잠잠히 잘 들어주는 역할뿐 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나름 그 이야기들이 한 귀로 들어가 다른 귀로 빠져나간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 더 이상 내 문제를 올려둘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항상 남들에 비해 힘든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잠깐의 착각에 불과하지 사실 무의식적으로 쌓여가는 정신적 고통을 나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런히 잘 포개져 누적되가던 그것들이 결국 벽에 닿아 처음 그 장농 안에 뭔가 꽉 차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그러나 봇물이 터져나온 후에 장농 안은 깨끗이 비는 것이 아니라 찌끼가 항상 남고, 한번 한번 그렇게 터질 때마다 점점 찌끼들마저 쌓여 이젠 항상 내 숨통을 죄어온다.
부모님께는 항상 믿을 수 있는 맏딸, 동생들에게는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언니, 누나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혹사시킬 수 밖에 없다. 이미 이렇게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온 탓에 더 이상 내 스스로가 변한다고 하여도 우리 가족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그런 이미지, 허상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고 지금 와서 그런 것을 일부러 깨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사실 그 사람들이 그다지 알아주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손을 뻗어 닿은 그 목표이지만 그래봤자 본전인 것이다. 거기에 조금 미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들의 실망 가득한 눈과 대면해야 하는데 난 그것이 죽기보다 싫다.
참.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친구들에게 이런 일을 털어놓아도 친구는 친구일 뿐이다. 아무리 하소연을 하고 푸념을 늘어놓아 보았자 아무 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고 괜히 내 마음만 더 공허해지기에 결국 또다시 이 문제는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 힘들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에 다 서운하고 상처받고 너무 힘들다. 아, 이제 생각해보니 Three Reasons I Will Never Marry 이딴거 다 필요없었다. 나의 완벽주의와 내가 우리 가족에게 가지고 있는 집착, 콤플렉스 때문에 결국 이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거부를 한 것이었다.
# by | 2007/12/19 06:47 | Journal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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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편 들 줄 알았는데 동생편을 들더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