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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동네 서점에 가서 베스트 셀러 중 눈길을 끄는 책 한 권을 집어들어 '잠깐' 앉아서 읽어보라고 만들어 놓은 의자에 걸터앉아 '죽치고' 몇 시간에 걸쳐 책 전체의 반 정도를 읽어 치우는 때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두세번 정도밖에 못 그랬지만, 앞으로는 자주 이런 기회를 애용할 계획이다. 보통 내가 잠에서 가까스로 깨고 정신을 차리며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때는 오후 7시 이후인데 그 때에는 이미 옆에 큰 공원까지 딸려있는 도서관은 닫히고 닫힌 후여서 갈 수가 없고 또 그렇다고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냉큼 샀다가 집에 와서는 땅을 치고 후회를 할까 그리 쉽게 성급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한참을 읽으면 살지 말지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겠지란 생각으로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보냈는데 결국은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런 식으로 자주 서점에 와 여러 다른 책들도 구경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 고른 책은 '책도둑'이다. 책 제목을 보고 '웬 책도둑?? 도둑 이야기인가?' 하고 집어 들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진짜 책을 훔치는 도둑의 이야기이다. ㅋㅋ 총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도둑'은 보통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약간 다르다. 화자는 작가나 일개 등장 인물이 아닌 죽음. 죽음의 신이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말하는 사람이 누구야? 왜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하지?'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는데 한 챕터 하나쯤을 읽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원래 좀 느려서.;; 하여튼 지금은 첫번째 책의 반 정도 읽었는데 얼른 가서 나머지 반도 마저 다 읽고, 두번째 책도 다 읽어야겠다. 점점 이야기가 흥미로워지고 있는데 기대가 된다.

#2
     오늘 아침에 테니스 레슨을 받다가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중간에 그만 두고 들어왔다. 비가 오는 와중에 노랑과 연두 사이의 땡그래가지고는 자꾸 얄밉게 내 라켓이 시키는 방향으로 안 날아가는 고 놈의 공을 노려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2학년 1학기 때 체육 테니스 수행평가를 보던 날이 기억났다. 그 날 우리는 이름 순서대로 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성헌제 쌤께서는 'ㅇ'이 끝나고 'ㅈ'이 지날 때까지 내 이름을 안 부르셨는데 내가 맨 마지막에 검도에서 테니스로 수강 변경을 했으니깐 넌 꼴지라고 하시면서 내가 내 순서인 줄 알았다가 아님을 깨달으면서 철퍼덕 녹아내리는 듯한 불쌍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재밌다는 듯이 웃으셨다. -_-;; 그렇게 난 허탈감을 물리치고 계속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내 팔과 라켓과 공을 원망하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 'ㅊ'인 은솔이가 시험을 볼 때쯤 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가는 선이 내 앞으로 슉슉 지나가는 듯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좀 더 시간이 지나니 후두둑거리며 커다란 물방울들이 눈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도 완전 말 그대로 물에 빠쥔 생쥐 꼴이 되고 손은 시려 죽겠고 포핸드 스트로크 폼은 여전히.... 구렸다. 결국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나까지 시험을 보고 기숙사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린 바들바들 떨며 김정환 쌤 오피스에 들어가서(맞나??) 이론 수업까지 받아야 했다. 언덕 길을 올라오며 어찌나 투덜댔던지 그날. 그 때는 비 오는데 가차없이 "그래도 칠 수 있어!"라고 삑사리와 함께 호통을 치시던 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는데, 오늘 선생님이 "감기 걸리겠다 오늘은 그만 하자."라고 했을 때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3
     학교에서 나왔을 때에는 홍대가 개강을 하면 아빠 친구분이 하시는 수학 수업을 듣겠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했지만 결국은 포기다. 왔다갔다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시간표도 복잡하고 집에서 할 일도 많고 진짜 솔직히 얘기하면 고등학교 수학도 잘 못하는게 어딜. 어휴~ 난 맨날 이런다. 계획만 잔뜩 세우고 결국 실천하는 거는... ㄷㄷㄷ

     어쨌든 며칠 전에 진짜 오랜만에 정석책을 펴 책상머리 앞에 앉아 문제 몇 개를 풀어보았다. 문제가 어찌어찌 풀리긴 한데 진짜 날이 갈수로 느끼는 건 난 선천적으로 수학적 머리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뭔가 명석하게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머리 위에 전구가 반짝 켜져야 되는데 실제 내 머리 속에서는 나태한 기계가 여유를 부리며 미적미적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답답하다. 나는 항상 무엇이든지 극에 치다르는 엄청난 것을 바라지만 왜 언제나 밍밍한 미지근함에 머무르는 것인지. 원래 그렇게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은 안다. 하지만 평범함, 중간은 싫은데.

     천재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진짜 난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하루하루 살아갈 수록 점점 더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은 정말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점! 에효ㅠ 머리가 좋아지고 싶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뭐해.;;

by 웅쌍 | 2008/03/07 01:19 | Journal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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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이오와 at 2008/03/07 09:09
ㅋ 응 ㅠㅠ 대학수업듣는거 별거아닌거 가테도 은근 빡세더라 ㅠㅋ 나도 전남대에서 전공도 아닌 교양 과목한 3개정도 듣는데 막 하루가 다지나가는듯 ㅋㅋㅋ 아참 나 이번에 대만 과학대회가서 MIT 애들만났어!ㅋㅋ 그중 한명은 한국애인데 얼리붙어서 막 내가 웅쌍 너 얘기했어 ㅋㅋ ^_^
Commented by 웅쌍 at 2008/03/07 10:05
아 진짜?? 이번에 우리 아빠 친구분 딸도 미국에서 학교 다녔는데 MIT 얼리에 붙었다고 그랬었는데 혹시 걔는 아니겠지??!! 나도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라서. ^^;; 너가 만났다는 애 이름이 뭐야?
음... 너도 대학교에서 수업 듣는구나~~ 근데 교양 과목 말고 전공 과목 듣지!! 일부러 그렇게 한건가..? ;;
Commented by 디제이 at 2008/03/07 10:45
사라고 놔둔책 몰래 읽고 오면 너도 책도둑 아니야?ㅋㅋ
담에 테니스치자 웅쌍 ㅋㅋㅋㅋ
그리고 웅쌍 정도면 천재 아닌가
Commented by 손톱 at 2008/03/07 11:51
"선천적으로 수학적 머리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웅쌍이 이 말 하니까 왜 이렇게 신빙성이 없어 보이지 -,-ㅋㅋㅋ
Commented by ssol at 2008/03/10 22:33
나도 그날 기억나, AP마이크로, 매크로 보기 전날이었어 틀림없이 ㅋㅋ
테니스하면 그런 눈물나는 기억이 많음에도 나도 레슨을 받고 있다는 건 ㅋㅋ
Commented by 박성민 at 2008/03/12 00:51
엑 난 정석 죽어도 펴보기 싫은데 ㅎㅎ
Commented by 마이구미 at 2008/03/15 23:13
헐!!!! 홍대로 들으러 오지 ㅠㅠ 오지 ㅠㅠㅠ 오지 ㅠㅠㅠㅠㅠ
비오는날 테니스 수행평가 보던날 생각난다 ㅋㅋㅋㅋㅋ
Commented by dreamcatch at 2008/03/18 19:23
최은솔이랑 쌍둥이랑 워드스마트 셤보는날 ㅋㅋ 그날도 IR때 다 외울라했는데 테니스 실기봤었다 ㅎㅎㅎㅎ
Commented by 웅쌍 at 2008/04/04 02:58
디제이> 음... 나도 내가 좀 도둑질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차마 해리포터 7권은 거기서 못 읽겠더라;;
손톱> 왜왜!!! 나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ㅠ
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쏠도 테니스를!!! 나중에 미국에서 만나면 다같이 테니스 치는거 아냐이거 ㅎㅎ
박성민> 나도 그래서 한번 피고는 손도 안대는....-_-;
마이구미> 눈물의 수행평가였어... 절대 안 잊혀질 ㅋㅋㅋㅋ
드림캐치> 그 때 워드스마트 봤었나?? 흐음~~~ 기억이 날락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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