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7일
남산 타워
생애 스무번 째 생일날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이 심심한 날을 어찌 충실히 보낼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 동안 과외가 많이 주는 바람에(ㅠㅠ) 이것저것 배우던 것도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다 그만두게 되어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오직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갈 때나 햇빛을 좀 보는 은둔 생활을 생일날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아, 머리 속으로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던 곳을 가야겠군! 그래서 택한 곳이 바로 남산 타워다. 이십 년 동안 그럭저럭 열심히 살아왔다고 나 자신을 토닥여주기 위해서 남산 타워에 올라가 보기로 한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가장 큰 도시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도대체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리고 다들 그 놈의 고철땡이 탑에 커플들이 많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많기에 모두 그리 말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면 나름 의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생일날을 어떻게 보낼지 머리에 그리면서 25일 밤에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현우는 학교에 갔고 아빠도 학교에 가셨고 하연이도 학교에 있었다(물론 다 다른 학교지만). 집에는 엄마 밖에 안 계셨는데 내가 일어난 시각이 거의 점심시간 즈음이 다 된 시각이어서(;;) 일어나자마자 밖에서 엄마가 점심을 사주셨다. 그리고 집에 다시 들어와 좀 빈둥빈둥 놀다가 아빠랑 홍대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져 버스를 타고 슝슝~ 갔다. 음. 원래는 그냥 나 혼자 뚤래뚤래 가서 커플 부대의 염장질에 대항하려고 했지만 그 계획을 집에서 입 밖에 내었더니 생일날 외로이 홀로 다닐 날 가엾이 여기셨던 아빠께서 같이 가주시겠다고 하셨다. ㅋㅋㅋㅋ
동대입구 역에서 내려서 순환버스를 타고 도착한 남산 꼭대기는 바람도 불고 숲도 우거져서 좋았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아주 맑지는 않아 서울 전경이 그리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아하게 정자세로 앉은 듯한 팔각정, 그 밑으로 쭉 뻗은 계단, 좋은 시간을 보내러 온 많은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들이 보였다. 커플들을 말하자면... 정말 헉 소리나게 많기는 많았다. ^^;; 그리고 전망대에 올라서 서울을 바라봤다. 물론 전망대 철망에 걸린 수많은 자물쇠들이 시야를 가려기는 했지만. 그런데 갑자기 그 많은 자물쇠를 보니 누가 나에게 날아다니는 파리 떼같은 열쇠들을 잠자리 채로 잡아서 그 곳에 걸려있는 자물쇠에 일일이 맞춰 모든 걸쇠들을 싹 풀어내라고 하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 될까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마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가 나오는 것을 봐서 그런 것 같다. -_-;;
대충 주위 구경을 하고 타워에 올랐다. 초고속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니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 때는 그 전망대에서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야경을 봤었는데...
올라가서 보니 참 서울은 빽빽하게 건물들로 꽉 차여있었다. 왼쪽에는 아파트, 오른쪽에는 작은 주택들, 그 너머로는 널찍한 한강에 다리가 드문드문 걸려있었다. 자리를 옮겨서 다른 쪽을 보니 저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청와대 지붕과 우리 나라 궁들, 간판 글자까지 다 아주 잘 보이는 큰 호텔들과 대형 마트들이 보였다. 혼자 왔었으면 그저 '저게 뭐냐...?'라는 생각을 잠시 한 후 눈만 바깥을 향한 채 다른 생각에 잠겼겠지만 아빠가 같이 오셨기에 이런 저런 서울 지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저 쪽 길로 쭉 가면 어느 쪽으로 가고, 저건 무슨 대교이고, 이 쪽은 동대문, 저 쪽은 어디 등등 물론 지금 와서는 거의 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름 열심히 익히려고 노력을 했다.
해가 저물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타워 내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점심은 엄마한테, 저녁은 아빠한테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으니 밑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지만 잠시나마 외동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앉은 자리 창 바로 밖에 수리를 위해 있는 것인지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다리 같은 것이 있었는데 한번 나도 스파이더맨처럼 기어 올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만 무서워서 그건 도저히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렇게 아빠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음식도 엄청엄청 많이 먹다보니 어느새 바깥이 깜깜해 져서 다시 타워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새 사람들이 어찌나 많아졌는지! 일본에서 단체 관광을 온 사람들도 많았고 그냥 짝짝으로 온 우리나라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 그래서 야경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분하게 본 것이 아니라 와글와글 떠들썩한 시장판에서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창문벽에 바싹 붙어서 보아야 했다.ㅠ 밤에는 불빛밖에 없어서 그런지 낮에 보았던 약간은 건물들로 가득 차 답답해보였던 서울 모습도 꽤 예뻐보였다. 미국에서 봤던 야경이랑은 다른 느낌으로 도로마다 약간씩 다른 가로등 색깔도 신기했고 멀리 보이는 한강 다리들의 갖가지 조명들도 보기 좋았다.
다 구경을 하고 타워 밑으로 나와 남산 밑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불편한 신발 때문에 발이 쬐까 아프긴 했지만 먹은 양을 생각하면 그저 버스에 타 몸을 편안히 하긴 좀 양심에 찔렸다. 내려가는데 산악 자전거 동호회에서 단체로 왔는지 엄청난 휑~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사람들이 쌩쌩 지나갔다. 가로등도 별로 없고 커브길이 많아 좀 위험해 보이던데. 그래도 뭔가 전문적으로 보여서 멋있었다. 가파른 경사를 씩씩하게 올라가고 온 몸에 딱 붙는 특이한 유니폼도 입고.
그 다음엔 뭐 그냥 버스를 두 번 정도 갈아타서 집에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피곤해서 기우뚱기우뚱 졸고 정신이 헤롱헤롱했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머리 속에서는 '흠, 오늘은 꽤 만족할만한 시간을 보냈군'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제는 좀 은둔 생활을 청산하고 좀 귀찮아도 밖으로 나가서 광합성을 하고 살아야겠다.
# by | 2008/06/27 15:47 | Journal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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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이번 말고.... 글쎄 생각보단 많지 않을거 같은데 ^^
남산타워 나도 담에 함 가봐야겠네 ㅎㅎㅎ
그나저나 수술은 잘 됐어? 중간에 배고파서 안 깨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