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2일
냉동고의 추억
어느 누구든 어렸을 적 한 번쯤 아주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직 너무 어린 탓에 자기 자신을 냉장고 칸에 넣을만한 요령이 없던지, 이미 나이가 들어 그 비좁은 칸에 큰 몸뚱아리를 쑤셔넣기에는 늦었다던지, 혹은 사이즈는 맞는데 몸을 완전 접을만한 유연성이 부족하던지 등의 이유로 실제 냉장고 안에 들어가 본 이는 몇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임시방편으로 우리는 부모님 몰래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그 앞에서 슝슝 나오는 냉기를 잠깐이나마 즐겼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그 동안 냉방 시설이 뛰어나게 발전한 결과 더 이상 냉장고의 냉기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이런 생각이 아주 평이하고 진부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진부한 생각을 가진 아이 중 하나였다. 여름 철만 되면 괜히 냉장고에서 뭘 꺼내먹는 척 수시로 냉장실, 냉동실 문을 팔랑팔랑 열어 제꼈고, 항상 3초 간의 즐거운 냉기를 이내 따라 냉장고 밑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던 온기(냉장고를 열어두면 기체가 된 냉매를 다시 액체로 바꾸는 과정이 계속 일어나는데 이 때 응축기를 통해 생성되어 열이 방출된다 - 출처 : 옛날에 본 티비 프로그램 '호기심 천국')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며 문을 다시 닫곤 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온기의 존재 이유를 속으로 꿍시렁꿍시렁 불평해대면서, 나는 몇 차례 냉기만을 공급받을 수 없을까 온갖 궁리를 하며 까치발을 들고 문을 열어 놓기도 하고 냉장고 칸 위에 올라 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내 이마로부터 시작해서 발등까지 폭포수의 슬로우 모션처럼 흘러내리는 시원함과 달리 발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뜻한 공기는 자꾸 무슨 개미처럼 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포기해버렸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칸에 내 몸을 꾸겨 넣을 수도 없는 웃기지도 않는 냉장고와는 비교도 안 될 큰 냉동 창고를 내 생애 처음으로 접한 날이 있었다. 아마도 냉동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던 외할아버지를 쫄래쫄래 따라 갔었던 것 같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어마어마하게 큰 네모 박스처럼 생긴 방에 발을 내디딘 순간 내 얼굴을 덮친 그 놀라운 시원함에 나는 엄청난 희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것이 있었다니!
나에게 배신감을 안겨주었던 냉장고와는 달리 냉동고는 3초가 지나도 계속 시원한 공기만을 나에게 불어댔다. 부채보다, 선풍기보다, 에어컨보다 훨씬 더 직빵으로 말이다. 골이 띵~띵~ 울릴 정도로 뇌의 아주 깊은 속 세포들까지 즐거워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집 안에서 미지근한 바람 밖에 안 나오는 부채나 부치고 있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나처럼 여기 들어오면 엄청 시원할텐데.' 그런데 정말 이상했던 점은 할아버지도 얼마 안 되어 뜨뜻한 찜통같은 바깥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왠지 혼자 남아있기는 싫은 기분이 들어 나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냉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으휴~ 어찌나 저 이글거리는 태양에게 주먹질을 해대고 싶던지! 내가 펀치를 날리고 때려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할아버지를 따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한 번 시원함을 맛 본 나로서는 그것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밖에 묶여있는 강아지랑 놀려고 나가는 척하면서 재빨리 냉동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미친 새처럼 파닥파닥거리니 바람이 부는 것처럼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문을 닫으니 안이 약간 깜깜하긴 했지만 희미하게 전구 하나가 있어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더위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날 할아버지 댁에 머무르는 동안 기회가 닿는 대로 냉동고를 방문하며 은밀한 시원함을 나 혼자 몰래 누렸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그러한 피서 행위는 아마 어른들께 마땅히 꾸중을 들었을 큰 잘못이다. 그렇게 자꾸 냉동고를 여닫으면 안의 들어있는 내용물들이 제대로 보존이 안 되었을 것이고 잘못했다가는 안에서 밖으로 문을 밀어낼 힘이 없어 갇혔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나는 고장난 냉동고에 갇혔지만 굳게 자신이 얼어 죽을 것이라고 믿어 결국은 정말 그렇게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큰 냉동고에 작은 유희를 위해 몰래 들락날락 하는 것이 나 자신을 꽤나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는 행동이란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상당히 아둔했던 나에게 냉동고란 그냥 '음식을 얼리는 곳'이었지, '나까지 얼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드디어 그 유명한 '고장난 냉동고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그제서야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냉동고에 갇히면 사람도 땅땅 얼은 냉동 고기처럼 된다는 사실을.
내가 위에 써 놓은 이 내용은 실제 나의 과거와 동일할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시점으로서는 내 뇌가 어쩌면 한두번 냉동고 입구 앞에서 싸늘한 냉기를 느꼈던 경험을 엄청나게 위험할 수도 있었을 장난을 쳤던 것으로 뻥튀기했는지, 혹은 그 때 당시에 너무 날씨가 더워 티비나 책을 얻은 '냉동고 안은 시원하다'라는 대한 정보가 아주 싸늘한 냉기를 바라던 나의 염원과 합쳐져 머리가 핑핑 돈 결과 만들어진 상상의 기억인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나의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달리 위에 쓴 내용이 대부분 정확할지도 모른다... 흠,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지각은 그 주인을 수시로 기만하기 일쑤이고 사람의 기억 또한 쉽게 자기 편한대로 왜곡되며 변형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도대체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추억하는 것 중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와서 나는 왜 이런 쓸데없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심심하기 때문이다.
# by | 2008/07/02 05:49 | Journal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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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엄청 심심해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퓽쌍
너도 덥구나 ㅋㅋㅋ 나도 요즘 더워서 힘들어
에어컨 틀어놓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도 덥다고 느끼고 있어 ㅋㅋㅋ
같은 나란데 왜이러지 ㅋㅋㅋㅋ
웅쌍이 본연의 이글루人의 자세로 돌아왔군 ㅎㅎ
더웠었는데 냉동고는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지만
추워져서 _-_ 나오고 말았어 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
디제이> 본연의 이글루인의 자세?? 무슨 자세를 말하는겨? ㅋㅋ
은하이> 너가 들어갔던데는 초강력 냉동고였나보다 ㅋㅋ 내가 들어갔던거는 그정도는 아니었어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