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4일
이집트 여행기 (1)
10일 간의 이집트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혼자 훌쩍 떠나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뚝 떨어져 보니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내가 알지 못하던 환경에 나 자신을 던지는 것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물론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워 몸은 신선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후련했다.) 그러나 어떤 곳에 가서 어떤 멋있는 건축물을 봤으며, 또 어느 지역에 가 이런 멋진 광경을 봤다라는 내용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 타지에 여행을 가서 가장 인상깊게 느꼈던 것은 그 모든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기 전 나의 이집트 인에 대한 생각은 '현지인=대부분 사기꾼'이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저기 책자라던가 이미 나보다 앞서서 갔다온 여행자들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바쿠시시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어이없는 만행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된지라 그런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디서는 어떤 사람을 조심해라, 이런 식으로 관광객에게 접근을 해 나중에 바가지를 씌운다, 낙타에서 혼자 내리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원하는 돈을 주지 않으면 내려주지 않는다 등 별 희한한 사연들이 다 있었다. 그랬으니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 본적이 없는 여자애가 뭐든지 값이 정해져 있는 유럽 같은 선진국도 아니고 저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 있는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홀로 살아남으려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무도 믿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난 첫 날 간신히 혼자 힘으로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한 후 바로 그 염려하던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여러 번 했건만, 그 모든 읽은 자료와 충고들은 다 잊은 채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을 같이 건너 준 한 40대 현지인의 친절에 넘어가 질질 끌려다니면서 여행 일주일치 비용을 한꺼번에 다 쓰고 그 사람 어머니네 집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의 한 말과 다르게 행동하고 점점 자신이 한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아, 이게 바로 그 사기이구나.'라는 생각이 듣고는 나 나름대로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래봤자 4시간 정도 더 끌려다녔지만.;; 결국은 기자 피라미드에서 낙타를 타고 그 사람 가게에 가서 물건을 좀 사주느라고 돈을 왕창 썼다. 더구나 카이로에 있는 한국인 운영 숙소에 전화를 하지 못했더라면 다시 그 사람 어머니네 집에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날 밤에는 정말 기가 막히고 앞으로 여행이 막막해서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비록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많은 돈을 쓰고 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자기 어머니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집트 사람들의 정말 일상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내가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를 데려간 그 유스리라는 사람 집에는 어머니, 다운증후군이 있는 남동생, 이모, 조카 둘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가정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장애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또한 볼 수 있었다. (그 장애가 있는 남동생은 다른 식구들과 의사소통은 잘 되지 않지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반 이집트 가정에서 먹는 음식을 대접을 받고 나 혼자 다녔으면 사먹지 않았을 매우 특이한 맛의 과일도 먹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고 합리화를 시키니 훨씬 더 마음이 편해지고 앞으로의 남은 9일도 희망적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부푸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 날은 조금 아주 완전히 좋게만 보기도 또 그렇다고 아주 나쁘게만 보기도 어려운 희한한 경험을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이집트 사람들의 친절을 듬뿍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아무래도 동양 여자를 좋아하는 편인 듯 싶었다. 동양 남자는 말고 여자만. 햇볕 따가운 카이로 시내를 낑낑대며 걸어다니고 있으면 지나가는 많은 이집트 인들은 웃는 얼굴로 "Welcome to Egypt"라 인사를 해주었다. 혹여나 길을 잃거나 방향을 잘 모를 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How can I go to ---?"라고 묻게되면 걸어가야 하는 경우는 손가락을 방향을 가르키며 친절하게 이 방향으로 가다가 길이 나오면 어느 쪽으로 돌고 등등 가르쳐 주었으며,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경우에는 버스 번호판이 아랍어로 씌여 읽을 수 없는 나를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같이 원하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 버스가 도착을 하면 저 버스라고 타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이집트의 버스는 정류장에서 제대로 멈추지 않아 움직이는 버스를 알아서 타고 알아서 내려야 했는데 나는 처음 이집트 버스를 타는지라 제대로 못 올라탔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절히 버스 태워준 그 분에게는 버스가 털털거리며 떠나버려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도 도대체 어디에서 내릴지 몰라 앞에 앉아있는 승객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께도 그 사람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내 뒤 쪽에 타고 있던 대학생인 것처럼 보이던 두 청년이 자기들도 거기서 내린다고 같이 내리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또, 타흐리르 광장에서 내리자 호텔에 가려고 하는 거냐고 물으면서 힐튼 호텔을 가르켜서 내가 좀 더 싼 호텔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한 사람이 또다시 손가락을 방향을 가르키며 길을 알려주려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그냥 같이 데려다주자고 했다. 그렇게 아주 우연히 카이로 시내 버스에서 만난 두 이집트인 청년은 싼 호텔이 많이 모인 광장 중심가 부근까지 날 데려다 주고는 앞으로 여행 조심히 잘 하라며 인사를 한 후 자기들 갈 길을 갔다.
또, 셋째날 바하리야 사막에서 카이로로 돌아온 후 나는 바로 밤기차로 룩소르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기자 역에 갔는데 모든 표가 다 팔렸다고 해서 다시 택시를 타고 람세스 역에 갔지만 그 날과 그 다음날까지 룩소르 행 기차표는 다 매진되어 있었다. 다음 여행지에 갈 교통편이 막혀버리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그냥 플랫폼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혹시 다른 창구에 물어보면 없는 표가 갑자기 생기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희망에 다시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또 한 번의 실망뿐이었다. 그렇게 울상을 짓고 어긋난 계획을 자꾸 생각하며 앉아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제복을 입고 희끗희끗한 콧수염을 기른 경찰 아저씨가 나타났다. 무슨 문제가 있냐 물어서 룩소르행 기차표를 사고 싶은데 이미 다 표가 팔려서 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대답을 하자, 아주 자신있는 표정으로 갑자기 따라오라고 했다. 쫄래쫄래 한 가닥의 실마리 같은 희망의 빛줄기를 느끼면서 난 그 분을 따라갔는데 아까 방금 전까지 매표소에 온 것이 아닌가! 원래 줄을 서지 않는 이집트 현지인들을 배로 퉁퉁 밀어내면서 그 경찰관 아저씨는 나를 매표소 창구 앞으로 이끌었다. 일단 먼저 내가 '룩소르 행 기차표요'라고 말하게 한 뒤 당연히 따라나오는 '다 매진되었습니다'라는 판매원의 대답에 경찰아저씨는 쑐라쑐라 아랍어로 역정을 내면서 그 판매원에게 '이 불쌍한 아이에게 없는 표라도 내놓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을 위해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는 주는 것 같고 그 판매원에게는 협박이 통하는 것 같지 않자, 아저씨는 다른 창구로 가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지만 방금 전 한 판 했던 그 판매원에게 들켜버렸다. 결국 안되겠다 싶었던지 아저씨는 아예 기차역 사무실 안으로 나를 데려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떵떵거리며 또다시 표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아랍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직원이 다 체크 표시가 된 기차 좌석표를 그 경찰 아저씨 얼굴 앞에 흔들어 대는 것을 보면서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마 한 시간도 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가끔 새로운 사람에게 '오늘 밤 룩소르 행 기차표요.'라고 소심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계속 여기저기 나를 데리고 가는 경찰 아저씨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것, 그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결국은 정말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아저씨는 표를 못 구해줘서 미안하다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보라고 하고는 장난스레 내일 살 때는 자기꺼 표까지 두 장 사 놓는 것 잊지 말라며 싱긋 웃고는 훌쩍 가버렸다. 결국 나는 그 다음 날 아침 기차역이 아니라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갔지만,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을 베푼 그 아저씨는 내 삶에 있어서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가기 전 나의 이집트 인에 대한 생각은 '현지인=대부분 사기꾼'이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저기 책자라던가 이미 나보다 앞서서 갔다온 여행자들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바쿠시시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어이없는 만행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된지라 그런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디서는 어떤 사람을 조심해라, 이런 식으로 관광객에게 접근을 해 나중에 바가지를 씌운다, 낙타에서 혼자 내리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원하는 돈을 주지 않으면 내려주지 않는다 등 별 희한한 사연들이 다 있었다. 그랬으니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 본적이 없는 여자애가 뭐든지 값이 정해져 있는 유럽 같은 선진국도 아니고 저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 있는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홀로 살아남으려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무도 믿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난 첫 날 간신히 혼자 힘으로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한 후 바로 그 염려하던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여러 번 했건만, 그 모든 읽은 자료와 충고들은 다 잊은 채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을 같이 건너 준 한 40대 현지인의 친절에 넘어가 질질 끌려다니면서 여행 일주일치 비용을 한꺼번에 다 쓰고 그 사람 어머니네 집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처음의 한 말과 다르게 행동하고 점점 자신이 한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아, 이게 바로 그 사기이구나.'라는 생각이 듣고는 나 나름대로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래봤자 4시간 정도 더 끌려다녔지만.;; 결국은 기자 피라미드에서 낙타를 타고 그 사람 가게에 가서 물건을 좀 사주느라고 돈을 왕창 썼다. 더구나 카이로에 있는 한국인 운영 숙소에 전화를 하지 못했더라면 다시 그 사람 어머니네 집에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날 밤에는 정말 기가 막히고 앞으로 여행이 막막해서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비록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많은 돈을 쓰고 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자기 어머니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집트 사람들의 정말 일상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내가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를 데려간 그 유스리라는 사람 집에는 어머니, 다운증후군이 있는 남동생, 이모, 조카 둘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가정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이집트에서 장애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 또한 볼 수 있었다. (그 장애가 있는 남동생은 다른 식구들과 의사소통은 잘 되지 않지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반 이집트 가정에서 먹는 음식을 대접을 받고 나 혼자 다녔으면 사먹지 않았을 매우 특이한 맛의 과일도 먹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고 합리화를 시키니 훨씬 더 마음이 편해지고 앞으로의 남은 9일도 희망적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부푸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첫 날은 조금 아주 완전히 좋게만 보기도 또 그렇다고 아주 나쁘게만 보기도 어려운 희한한 경험을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이집트 사람들의 친절을 듬뿍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아무래도 동양 여자를 좋아하는 편인 듯 싶었다. 동양 남자는 말고 여자만. 햇볕 따가운 카이로 시내를 낑낑대며 걸어다니고 있으면 지나가는 많은 이집트 인들은 웃는 얼굴로 "Welcome to Egypt"라 인사를 해주었다. 혹여나 길을 잃거나 방향을 잘 모를 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How can I go to ---?"라고 묻게되면 걸어가야 하는 경우는 손가락을 방향을 가르키며 친절하게 이 방향으로 가다가 길이 나오면 어느 쪽으로 돌고 등등 가르쳐 주었으며,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경우에는 버스 번호판이 아랍어로 씌여 읽을 수 없는 나를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같이 원하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 버스가 도착을 하면 저 버스라고 타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이집트의 버스는 정류장에서 제대로 멈추지 않아 움직이는 버스를 알아서 타고 알아서 내려야 했는데 나는 처음 이집트 버스를 타는지라 제대로 못 올라탔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절히 버스 태워준 그 분에게는 버스가 털털거리며 떠나버려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도 도대체 어디에서 내릴지 몰라 앞에 앉아있는 승객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께도 그 사람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내 뒤 쪽에 타고 있던 대학생인 것처럼 보이던 두 청년이 자기들도 거기서 내린다고 같이 내리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또, 타흐리르 광장에서 내리자 호텔에 가려고 하는 거냐고 물으면서 힐튼 호텔을 가르켜서 내가 좀 더 싼 호텔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한 사람이 또다시 손가락을 방향을 가르키며 길을 알려주려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그냥 같이 데려다주자고 했다. 그렇게 아주 우연히 카이로 시내 버스에서 만난 두 이집트인 청년은 싼 호텔이 많이 모인 광장 중심가 부근까지 날 데려다 주고는 앞으로 여행 조심히 잘 하라며 인사를 한 후 자기들 갈 길을 갔다.
또, 셋째날 바하리야 사막에서 카이로로 돌아온 후 나는 바로 밤기차로 룩소르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기자 역에 갔는데 모든 표가 다 팔렸다고 해서 다시 택시를 타고 람세스 역에 갔지만 그 날과 그 다음날까지 룩소르 행 기차표는 다 매진되어 있었다. 다음 여행지에 갈 교통편이 막혀버리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그냥 플랫폼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혹시 다른 창구에 물어보면 없는 표가 갑자기 생기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희망에 다시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또 한 번의 실망뿐이었다. 그렇게 울상을 짓고 어긋난 계획을 자꾸 생각하며 앉아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제복을 입고 희끗희끗한 콧수염을 기른 경찰 아저씨가 나타났다. 무슨 문제가 있냐 물어서 룩소르행 기차표를 사고 싶은데 이미 다 표가 팔려서 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대답을 하자, 아주 자신있는 표정으로 갑자기 따라오라고 했다. 쫄래쫄래 한 가닥의 실마리 같은 희망의 빛줄기를 느끼면서 난 그 분을 따라갔는데 아까 방금 전까지 매표소에 온 것이 아닌가! 원래 줄을 서지 않는 이집트 현지인들을 배로 퉁퉁 밀어내면서 그 경찰관 아저씨는 나를 매표소 창구 앞으로 이끌었다. 일단 먼저 내가 '룩소르 행 기차표요'라고 말하게 한 뒤 당연히 따라나오는 '다 매진되었습니다'라는 판매원의 대답에 경찰아저씨는 쑐라쑐라 아랍어로 역정을 내면서 그 판매원에게 '이 불쌍한 아이에게 없는 표라도 내놓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 혼자만을 위해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는 주는 것 같고 그 판매원에게는 협박이 통하는 것 같지 않자, 아저씨는 다른 창구로 가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지만 방금 전 한 판 했던 그 판매원에게 들켜버렸다. 결국 안되겠다 싶었던지 아저씨는 아예 기차역 사무실 안으로 나를 데려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떵떵거리며 또다시 표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아랍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직원이 다 체크 표시가 된 기차 좌석표를 그 경찰 아저씨 얼굴 앞에 흔들어 대는 것을 보면서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아마 한 시간도 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가끔 새로운 사람에게 '오늘 밤 룩소르 행 기차표요.'라고 소심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계속 여기저기 나를 데리고 가는 경찰 아저씨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것, 그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결국은 정말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아저씨는 표를 못 구해줘서 미안하다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보라고 하고는 장난스레 내일 살 때는 자기꺼 표까지 두 장 사 놓는 것 잊지 말라며 싱긋 웃고는 훌쩍 가버렸다. 결국 나는 그 다음 날 아침 기차역이 아니라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갔지만,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을 베푼 그 아저씨는 내 삶에 있어서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by | 2008/07/24 21:33 | Journal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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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름 좋은 사람들도 좀 많이 본거 같넹? ㅋㅋ 훈훈한 스토리. ㅋㅋㅋ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삼 ㅋ
아 근데 우리 이제 미국 갈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은하이 가기 전에 한번 더 봐야지~~!!!!
진짜 엄청난 경험을 했구나!!! 엄청 신기하고 엄청 대단해 웅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