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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야 웅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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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Independent Me</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Fri, 08 Aug 2008 02:25:5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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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는야 웅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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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Independent M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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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사주 팔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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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nbsp;&nbsp;&nbsp;&nbsp; 얼마 전 불어반 모임이 있은 후 오랜만에 만난 우리 떼띨이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같이 명동에서 옷 구경도 하고 영화도 한 편 오랜만에 보고 마지막으로 지나가다가 장난삼아 사주팔자도 한 번 보았다. 나와 떼띨이의 사주를 보아주신 아저씨께서는 우리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적은 다음 뭔가 책을 뒤적뒤적 거리며 표 같은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한자 비스무리한 것들을 막 휘갈겨 쓰셨는데, 그리고는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마치 어렸을 적 자기 이름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의 획수를 각각 세서 합한 후 그 숫자에 따라 ○, ☆, △, ♡ 표시를 해서 둘이 잘 될지 말지 알아보았던 것처럼... 우리 동네만 이런 거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한자를 총 여덟 개를 적고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그 글자들을 가리키면서 설명을 해주셨다.<br><br>&nbsp;&nbsp;&nbsp;&nbsp; 적어도 150~200 페이지 정도는 되보이던 책에서 일일이 글자를 찾아 적는 것을 보니 뭔가 사주가 미신이던 맞는 것이던 나름의 체계가 있어보였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누가 정했던 것일까? 그저 순전히 어떤 사람이 무작위로 자기 맘대로 근거없이 정해서 되는대로 표를 만든 것은 아닐&nbsp;것 같고.&nbsp;사주는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그 역사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대부분의 검색 결과는 사주를&nbsp;돈 받고 보아주겠다는 사이트들 뿐이지 그의 역사나 문화 혹은 기원 등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그나마 찾은 것에서 보면 중국 당나라 때부터 있었는데 동양 철학에 기반을 두어 계절, 절기, 별자리의 위치 등에 따라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기록에 의한 계산법이라고 나와있었다.&nbsp;그러나 그 출처가 인터넷 사주 다음 카페였기 때문에&nbsp;뭔가&nbsp;동양에서 한의학을&nbsp;믿는 것처럼 사주도 그와&nbsp;비슷한 위치에 있으니 사주 또한&nbsp;근거가 있고 믿을만한 것이다라는 투로 써 놓았지만 그다지 객관적인 입장은 아닌 것&nbsp;같다.<br><br>&nbsp;&nbsp;&nbsp;&nbsp; 사람들은 뭘 그렇게 운명, 행운, 미래의 일에 대해 알고싶어 할까? 나는 별로 이상하게도 나의 미래가 궁금하지는 않아서 그렇게 사주팔자나 점괘 등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는 가지 않는다. 인생은 흘러흘러 가기에 잘 풀리면 좋은 것이지만 또 잘 안 풀려도 그냥 받아들이고 살면 되는 것 같다. 뭔가 노력을 해서 개선을 할 수 있으면 그리 하면&nbsp;되는 것이고, 만약&nbsp;내가 바꿀 수 없는 정말 어쩔 수 상황이라면... 뭐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뭐 어째. 평소 항상 느긋한 태도로 살아서 그런지 어떤 나쁜 일이 닥쳐서 내 인생이 내가 머리 속에 그리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거나 사는 환경이 확 달라지더라도 금새 적응을 하고 그냥 별 불평이나 '나는 이제 망했다'라는 생각없이 계속 살아갈 것 같다. (물론 아직 그리 큰 일은 나에게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실제 그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nbsp;히히)<br><br>&nbsp;&nbsp;&nbsp;&nbsp;&nbsp;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사주를 보는 동안 지불했던 시간과 돈이 아주 낭비라던가 쓸데없다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nbsp;'네 인생날이 훤하게 보인다'라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시던 그 아저씨 앞에 앉아있는 동안 나의 그리고 떼띨이의 사주 결과의 신뢰성에&nbsp;대해 왈가왈부하며 열을 올리기에는 은영이와 함께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또 덤으로 이런 것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난 절대로 점 같은 건 안 볼거야.'라고 마음 속으로 꽝꽝 다짐을 했었는데, 무엇이든지 그것이 좋던 싫던 나쁘던,&nbsp;필요도 소용도 쓸데도 없다고 생각하여 그저 지나치는 것보다는 한 번 시도해보고 경험하는 것도 꼭 손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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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Fri, 08 Aug 2008 02:03:41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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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록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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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nbsp;&nbsp; 며칠 전에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지금까지 블로그에 올렸던 포스팅들을 쭉 한번 다 훑어보았다. 사실 내가 직접 쓴 글을 열심히 읽어보았다기 보다는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이런 내용을 썼었구나'하고 기억하는 정도였지만. 2007년 9월 14일에 처음 올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147개를 썼는데 (이것까지 포함하면 148개) 나름 1년이 가까이 가는 동안 그다지 많이 쓰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맘때 쯤 해서는 거의 250개를 넘게 올렸을 줄 알았는데,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나보다.&nbsp;<br><br>&nbsp;&nbsp;&nbsp;&nbsp; 졸업한 후에 지키기로 결심했던 일 중 하나가 매일 매일 포스팅을 하나씩은 꼭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계속 시간을 때우기만 하는 삶에서 하루마다 쓸 거리가 생기는 것은 좀 무리였던 것 같다. 쓸 거리를 만들기 위해 내가 노력을 하고 일부러 더 열심히 할 일을 찾았던 것도 아니었고.&nbsp;<br><br>&nbsp;&nbsp;&nbsp;&nbsp; 그래도 지나간 기록들을 다시 되돌아보니 재미있었다. 꼭 내가 쓴 내용이 아니라 그 글을 올릴&nbsp;당시에 나에게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나면서 웃음이 났다.&nbsp;갑자기 삘 받아서 올린 결혼 안 하겠다는 선전포고와&nbsp;친구들의 당황스러운 패러디들(-_-;;), 친구와 서로 블로그에 훈훈한 댓글을 남기자고 약속했던 기억, 피자를 너무 먹고 싶어서 거의 구걸했던 일,&nbsp;604호 친구들끼리 처음 간 강릉 바다 여행, 에세이가 안 써져서 너무 골치가 아파 올렸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은 에세이 로봇 포스팅, 첫 은주 디너와 바베큐 파티 때의 눈싸움, 이번에도 특별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툴툴거렸던 2007년 크리스마스, 어느 순간부터 간간이 출현하셨던 아직도 정체를 모르는 익명의 'MIT 재학생',&nbsp;맨날 서로 더&nbsp;싸이코 또라이라고 싸우던&nbsp;컴퓨터 반, 그리고 간간이 폭로했던 욕쟁이 바보였던 나의 과거...&nbsp;또, 학교를 떠난 후에는 간간이 만났던 사람들,&nbsp;앞으로 남은 8개월을 보람차게 보낼 것이라&nbsp;한껏 부풀었던 2008년&nbsp;초반의&nbsp;꿈과 희망(결국 뒤돌아보면... 뭘 했는지.;;), 많은 기억이 남는 중국, 태국, 필리핀, 이집트 여행... <br><br>&nbsp;&nbsp;&nbsp;&nbsp; 말투나 소재를 보면 그 때 나의 기분과 정신 상태가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고 (예를 들면, 공포의 SAT I 시험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영문학 수업으로 화살을 돌려 아무 죄 없는 문학 작품에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때론&nbsp;핫소스를 꿀꺽꿀꺽 마시고 우주로&nbsp;날아가고 싶었거나) 혹은&nbsp;학교에서&nbsp;그 때 누가 나한테&nbsp;어떻게 말했었구나 혹은 뭐라고 놀렸었구나 등의 일 들이 다 생생히 기억난다.&nbsp;캠코더로 동영상을&nbsp;찍었던 것처럼.&nbsp;보통 때는&nbsp;일부러 기억을 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용량에서 뭘 꺼내야 할지&nbsp;갈팡질팡 하다 결국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애.ㅠㅠ'&nbsp;혹은 '벌써 기억이&nbsp;가물거리며 사라지는건가..."하고 낙담을 했었는데.<br><br>&nbsp;&nbsp;&nbsp;&nbsp;&nbsp;학교에서 나름 바쁘고 정신없었을&nbsp;시기에&nbsp;왜 쓸데없이&nbsp;많은 시간을 블로그에 투자했냐 묻는다면, 답은 아마도 원서를 쓰기는 싫은데 그렇다고&nbsp;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있기 또한 싫어서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nbsp;에세이를 써야하는 현실을&nbsp;'순진 쌤이 쓰라고 하셨으니까.'라는 구차한 핑계로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머리 속으로나마&nbsp;잠깐&nbsp;갔다올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도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 촤르르 펼쳐지더라도 꼭 이렇게 내 일상 생활을 기록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ㅋㅋ<br><br>&nbsp;&nbsp;&nbsp;&nbsp; 아, 그리고 블로그를 생각지도 않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순진쌤 진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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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Tue, 05 Aug 2008 06:52:33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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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성가대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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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div style="TEXT-ALIGN: center">CCM -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br><br>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br>내 맘에 사랑 없으면<br>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br>아무 소용 없으니<br><br>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br>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br>나 자신 다 주어도 <br>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br>사랑은 영원하네<br><br>사랑은 온유하며<br>사랑은 자랑치 않으며<br>교만하지 아니하며<br>불의 기뻐하지 아니하네<br><br>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br>내 맘에 사랑 없으면<br>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br>아무 소용 없으니<br><br>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br>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br>나 자신 다 주어도<br>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br><br>사랑은 영원하네<br>영원하네<br>영원히<br><div style="TEXT-ALIGN: left"><br><br>&nbsp;&nbsp;&nbsp;&nbsp; 내가 아주 독실한 신자라고 자신있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가면 항상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화딱지가 나고 성질이 버럭버럭 나다가도 금새 차분히 나 자신을&nbsp;돌아보게 되고, 이런 저런 일들로 힘이 들고 마음이 지쳐있을 때에는 다시 미소를 지을 수&nbsp;있는&nbsp;힘을 얻는다.&nbsp;홀로 의지할 사람도 없이 떠났던&nbsp;여행길에서도 유명한 성지라 해서&nbsp;찾아가 들어간 자그마한 교회에서는 외로움과 피곤을 씻어낼 수 있었다.<br><br>&nbsp;&nbsp;&nbsp;&nbsp; 오늘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성가대가 부른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는 나 또한&nbsp;어렸을 적 초등부 성가대를&nbsp;하는 동안 한번쯤&nbsp;악보를 받고&nbsp;열심히 불렀던&nbsp;기억이 있다.&nbsp;오랜만에 예상치도 못하게 이 성가를 다시 들었더니 많은 생각이 났다. 옛날 옛적에 아주아주 열씸히! 매주 토요일마다&nbsp;쬐끄만 손으로 악보 이리저리 받아들고 파일에 껴 넣으면서&nbsp;혹시나 틀린 음을 낼까 조마조마 소심하게&nbsp;했던 성가대 연습. 그&nbsp;때는 아무 이유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절대로 그 연습을 빠지면 안된다고 생각했었는데. 한번은 토요일에&nbsp;할머니 댁에 갔던 날, 성가대 연습을 꼭 가야 한다고 땡깡을 부려서 팔당에서 일산까지 그 먼 길을 나머지 식구들을 다 뒤로한 채 혼자 이모랑 같이 교회까지 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출발한 시간이 늦어서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연습이 다 끝났었다는... 그래서 결국 아무 것도 못한 채 다시 할머니 댁으로 돌아왔었다. ^^;;</div></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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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Sun, 03 Aug 2008 18:32:57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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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 8월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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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nbsp;&nbsp;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는 졸업한 이후에 몇 번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났다. 같은 방 애들처럼 자주 보는 애들은 가기 직전까지 볼 수도 있겠지만, 어렵게 어렵게 약속을 잡아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헤어질 때 선뜻 '다음에 또 보자'라고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을 보니 정말 미국에 갈&nbsp;날이 다가오긴 다가왔나보다. '한국에서는 더 보기 어려울 것 같고 미국 가서 볼 수 있음 보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친구도 있고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자' 혹은 '기회가 되서 또 보면 좋겠네'처럼 희망은 가지지만 확신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nbsp;<br><br>&nbsp;&nbsp;&nbsp;&nbsp; 이제 한국을 떠나 그 넓고 넓은 미국 땅에 도착을 하게 되면 살면서 몇 번에나 고등학교 친구들을 볼 수 있을까? 가끔 1년에 한 번씩 기모임이나 동문회에서 얼굴들을 잠깐씩 볼 수는 있겠지만 그런 모임에 10기 전체가 참석하지는 못할 것이고 혹은 아예 내가 못 가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갑자기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사 동창들처럼 만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친구들도 없는데.ㅠㅠ<br><br>&nbsp;&nbsp;&nbsp;&nbsp;&nbsp;드디어 긴 긴 휴식 기간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nbsp;또 무언가 열심히&nbsp;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nbsp;생각에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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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Sun, 03 Aug 2008 12:12:25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외가댁 친척들과 간 홍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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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nbsp;&nbsp; 며칠 전에 외가댁 식구들과 함께 홍천으로 2박 3일동안 놀러갔다 왔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편찮아지셔서 못 가시게 되었지만, 할아버지와 미국에서 오신 이모와 이모 딸 혜림이, 그리고 한국에서 종종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나 명절 때 보는 삼촌, 외숙모, 개구장이 철훈이와 새침떼기 민영이, 그리고 우리 식구는 엄마, 나, 현우 이렇게 함께 떠났다. 이렇게 친척들과 어디를 같이 놀러갔던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여러 가족 행사를 많이 빠져서 그 동안 사촌 동생들과 같이 놀지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몇 년만에 같이 며칠을 지내려니 솔직히 말하면 어색할까봐 걱정이 되었었다. 특히나 나에게는 내 또래의 사촌들은 하나도 없고 모두 다&nbsp;10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들 밖에 없는데, 난 어른들 틈에 끼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애기들의 호감을 얼마나 얻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nbsp;<br><br>&nbsp;&nbsp;&nbsp;&nbsp; 하지만 일단 가서 지내니까 정말 좋았다. 나에게 있어서 식구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서 할아버지가 해주시는 재미있는 옛날 얘기를 다들 귀 기울여 듣고 사촌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것은 약간 딴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아주아주 어렸을 때 물론 그랬던 적이 있었겠지만 하도 오래 되어서 그 때 당시에는 사촌 동생들이 아예 존재하지조차 않았었기 때문에 이번만큼 복닥복닥거리지 않았을 것이다.&nbsp;그러나 이번에는 삼촌네&nbsp;식구들도 이해 못한다는 민영이의&nbsp;쫑알쫑알 수다를&nbsp;최선을 들어주고 철훈이와 혜림이랑 탱탱볼 차기 놀이도 하고 목마도 태워주고 강에 나가서 다같이 쪼르르 줄 서서 견지 낚시도 해보고...&nbsp;내 머리에 정신이 깃든 이후 처음 (어렸을 때에는 개념이 박혀있지 않았기에)&nbsp;바라보게 된 대가족적인 광경에&nbsp;잠시 기분이 묘해졌다.&nbsp;미국에 가기 직전 이렇게 친척들과&nbsp;같은 시간, 같은&nbsp;공간에 모여 그저 마음 편하게 지냈던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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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Sun, 03 Aug 2008 08:05:40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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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기숙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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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strong><u>Next House (RBA) Room 265<br></u></strong><br>&nbsp;&nbsp;&nbsp;&nbsp; 기숙사 배정이 드디어 나왔다. 넥스트 하우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지? 책자를 대충 읽고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로터리를 넣었기 때문에 이 기숙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대충 들은 이야기로는 학교 캠퍼스에서 제일 멀고 한국 사람도 없다는 것. 그 거리로 말하자면 기후가 좋지 않은 보스톤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정녕 학점을 위해 이 숙제를 내러 강의동까지 가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딱 고 정도라 한다. 사실 Simmons Hall 아니면 Baker House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이 둘이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기숙사이다.) 다른 기숙사는 아무렇게나 대충 순위에 넣어버린 것인데 이렇게 1순위, 2순위 둘 다 떨어지고 예상치 못했던 곳에 배정을 받을 줄 몰랐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1순위에 턱 붙어버리는 것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던가...? 딱 결과가 나왔을 때 정말 헉 소리가 나왔다. '이게 뭐야... 여긴 어디야....'라는 생각이. 오리엔테이션 주간에 한 번 둘러보고 바꿀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은 한번 가보고 맘에 정 안 들면 바꾸던지. 왠지 그냥 이렇게 결정이 나버리니까 가혹한 운명에 순응해 고난을 이겨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nbsp;그래봤자 기숙사인데 얼마나 다르겠냐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하고.&nbsp;이 기숙사는 뭔가 자기네들끼리 social life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같아서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한국 친구들과 선배들과 만날 기회는 자연스레 적어지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뮤지컬과 연극을 많이 하는 사람들 틈에 껴서 생활하는 것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 이렇게 난 긍정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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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Mon, 28 Jul 2008 16:57:08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item>
	<item>
		<title><![CDATA[ 월트 디즈니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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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nbsp;&nbsp;&nbsp;&nbsp; 어렸을 때부터 나는 월트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 영화를 정말 많이 보면서 자랐다. 본 비디오를 또 틀어서 보고, 또 보고... 어렸을 때 미국에서 부모님께서 사신 비디오는 자막이 영어로 나오거나 아예 무자막이었기 때문에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림만 열심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nbsp;<br><br>&nbsp;&nbsp;&nbsp;&nbsp; 일요일 아침마다 꼭 내가 교회를 가야할 시간에 시작을 하던&nbsp;디즈니 만화 동산. 왜 항상 딱 고 시간에 하던건지. 처음 10분 정도만 보고&nbsp;아쉬움을 뒤로&nbsp;한 채&nbsp;텔레비전을 꺼야했다.&nbsp;<br><br>&nbsp;&nbsp;&nbsp;&nbsp; 난 공주 시리즈는 별로 안 좋아한다.&nbsp;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너무&nbsp;예뻐서 비호감이다.<br><br>&nbsp;&nbsp;&nbsp;&nbsp;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항상 무서워했다.&nbsp;어렸을 때도 무서웠는데 며칠 전 집에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는데 무서워서 중간에 그냥 꺼버렸다.&nbsp;미친 보라색 고양이가 초승달같은 입을 드러내고 실실거리며 웃을 때였다.<br><br>&nbsp;&nbsp;&nbsp;&nbsp; 디즈니의 작품들은 항상 나에게&nbsp;많은 영감을 주었다.&nbsp;내가 두 번째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인 '벅스 라이프'는 그 때 당시 나에게는 엄청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디즈니-픽사의 위대한 3D 영화를 꼽으라면 대부분 '토이 스토리'를 떠올리겠지만, 난 그 큰 화면에서 메뚜기의 딱딱한 껍질과 애벌레의 말랑출렁거리는 살과 정신없이 움직여대는 엄청난 숫자의 개미 다리를 표현한 '벅스 라이프'가 더 좋다.&nbsp;그 전에 한 번도 제대로 된 영화를 본 적이 없었고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기에 더 대단하게 느껴졌을런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표현된 장난감과 인형의&nbsp;세계보다는 다양한 질감이 느껴지는 자연의 모습을 인간이 모방하여 새로운 가상의 공간에 구현시켰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br><br>&nbsp;&nbsp;&nbsp;&nbsp; 그 후로&nbsp;난 계속 디즈니의 3D 애니메이션을 쭉 빼 놓지 않고 거의 다 봐왔다. 해를 더해 갈수록 발전해가는 놀라운 기술력에 감탄을 하면서 드디어 난 '몬스터 주식회사'를 봤다. 거기서 나오는 설리의 털이 너무 진짜 같아서 깜짝 놀랐다. 바로 내 손가락을 스치면 보들보들하게 느껴질 것만 같은 초록색 바탕의 보라 땡땡이 무늬 설리. <br><br>&nbsp;&nbsp;&nbsp;&nbsp; '니모를 찾아서'는 내 대학 에세이에까지&nbsp;인용이 되었다.&nbsp;난 항상 물가에 가면 일렁이는 물결을 통해&nbsp;바닥에 비치는 햇빛의 무늬를&nbsp;보고 신기해 했었는데&nbsp;그 영화에서는 그것을&nbsp;너무나 자연스럽게&nbsp;재현시켜 놓았었다. 그냥 바다 풍경만 보면 정말 진짜&nbsp;바다 모습과 헷갈릴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내용을 에세이의 도입 부분으로 썼었는데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잘&nbsp;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br><br>&nbsp;&nbsp;&nbsp;&nbsp; 요즘 한참 광고를 많이 하고 있는 Wall-E도 보고싶다. 청소기 로봇이라니. 고등학교 3학년 때 과제연구 시간에 연구를 하려고 잡은 주제가 로봇청소기여서 더 관심이 가는지도 모른다.&nbsp;그러나 그 연구는 말 그대로 실패였다.ㅠㅠ 난 한 학기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그냥 맨날 컴퓨터실에서 김창환 쌤이랑 수다 떨면서 주스나 홀짝홀짝 마시고 놀았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진전이 하나도 없었고 결국은 거의 보고서 형식으로만 결과물을 제출했었다.&nbsp;<br><br>&nbsp;&nbsp;&nbsp;&nbsp; 이집트로 첫 아프리카 여행 입문을 해보니 이제는 다음 여행 때&nbsp;아프리카 횡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집트는 고대 문명을 보는 것을 목적으로 했었지만, 다음번에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광활한 자연을 체험하고 싶다. 궁금해져서 아프리카 여행을 갔다온 사람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사진들을 많이 봤는데 '라이온킹'에 나오던 동물들과 장면들이 고대로 찍혀져 있었다. 사자, 하마, 누, 기린, 사슴, 영양... 이젠 나도 가서 직접 내 눈으로 보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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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Mon, 28 Jul 2008 02:45:36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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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집트 여행기 (2)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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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nbsp;&nbsp; (1)에는 내가 교통편에 있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썼지만, 두 번째에는 먹을 것에 관련해 친절을 베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기차역에서의 일이 있은 후, 다음 날&nbsp;나는 토르고만 버스 터미널에 새벽같이 나가 밤 버스&nbsp;표를 미리 사 두었다. 그 날은 택시도 타지 말고 발, 지하철로 싸게 싸게 다녀보자라 마음을 먹고 무작정 큰 길이 보이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nbsp;일찍 나오는 바람에 아침을 먹지 못해 약간의 배고픔을 느껴 주위에 뭘 사먹을 곳이 없나 두리번거렸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아무 상점도 식당도 문을 열지 않았다. '오늘도 아침은 패스인가...'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우리 나라로 치면 붕어빵 장사 정도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포장마차가 보였다. 주인은 뭔가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옆에는 두 젊은 청년이 뭔가를 아에시라는 이집트 빵에 찍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어 보였다. 뭘 먹는지도 모르겠어서 함부로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혹시나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싶어 슬금슬금 다가갔더니 음식을 먹고 있던 두 사람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nbsp;<br><br>&nbsp;&nbsp;&nbsp;&nbsp; 조심스레 다가갔더니 대뜸 같이 먹자고 했다. 그래서 이거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웃으면서 "Free for you! I pay for you."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1분 전 처음 본 외국인한테!!! 일단은 배가 너무 고파서 사양이나 그런 것은 집어치우고&nbsp;고맙다고 한 뒤 나도 한 그릇 받았다. 푸르라는 음식이었는데 영어에 'fool'과 발음이 비슷해서 좀 웃겼다. 어쨌든 그 음식은 콩을 오래오래 불렸다가 익히고 라임인가 레몬 즙을 뿌려서 먹는&nbsp;죽 비슷한 요리였다. 그것을 아에시라는 이집트인의 주식 빵으로 찍어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딸려서 샐러드도 함께&nbsp;나왔는데, 토마토, 당근, 가지, 고추를 절여서 피클로 만든 것 같은 맛이 났다. 나를 완전 애기로 봤는지 내가 주섬주섬 먹는 모습을&nbsp;완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면서 연신 가지를 찢어서&nbsp;주고 당근이나 토마토도&nbsp;손으로 집어 주기도 먹으라고 주었다. 그러다가 작은 고추를 하나 집어 주면서 "It's hot."라고 말하고 먹으라고 또 권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한 입 잘라 먹었는데 뭐 그냥 먹을만 해서 우리나라에서 풋고추를 먹는 대로 위에 줄기 부분 직전까지 다 씹어서 먹었다. 다 먹고 남은 부분만 자랑스레 보여줬는데 갑자기 그 둘이 푸하하!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요상한 표정을 짓고 뒤로 나자빠지면서 웃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한참 뒤 간신히 진정을 한 후 고추는 안의 씨까지 다 먹는 것이&nbsp;아니라 겉부분만 찢어내서 먹는 거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그제서야 "아~~~" 하고 알아차렸다는 표정을 짓자, 또다시 빙그레 웃으면서 무슨 애기한테 해 주듯이&nbsp;겉부분만 떼어내서&nbsp;먹으라고 집어 주었다.<br><br>&nbsp;&nbsp;&nbsp;&nbsp; 그렇게 계속&nbsp;한참을&nbsp;먹고&nbsp;서로 이름도 묻고&nbsp;간단한 대화도 나누다&nbsp;보니 두 사람은&nbsp;푸르를 다 먹어버렸고 난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nbsp;(아무래도 그 두 사람이&nbsp;피클 샐러드를 나한테 너무 많이 먹인 것 같았다.)&nbsp;많이 남긴 것을 보면서 얼른 다 먹으라고 막 그래서 그냥 실실 웃으면서 이젠 배가 불러 더 못 먹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젠 또 물 마시라고 현지 사람들이 마시는 물을 양철컵에 완전 양껏 따라 주었는데, 성의를 봐서는 콸콸 따라진 물을 다 들이키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외국인은 생수를 사 먹어야 하고 현지인들이 마시는 물은 마시면 안 되어서 한 모금 정도만 홀짝&nbsp;마셨다.&nbsp;<br><br>&nbsp;&nbsp;&nbsp;&nbsp; 물까지 다 마시자 진짜 이제 헤어질&nbsp;시간이 다가왔다. 그냥 가는 것은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사진을&nbsp;같이 찍고 음식을 해 준 포장마차 주인과 음식을 사 준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nbsp;했다. 주인과는 이야기를&nbsp;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주인이 조금 음식값을 싸게 해주었다고 그랬다. 어쨌든 또 한 번 아침부터 가슴 속이 따땃해지는&nbsp;것을 느끼며&nbsp;꽉 찬 배와 함께 씩씩하게 발걸음을 돌렸다.<br><br>&nbsp;&nbsp;&nbsp;&nbsp; 여기까지가 카이로에서의 이틀이다. 룩소르에 가서는 사실 카이로에서처럼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았다기 보다는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카르낙 신전에서 미니 버스인 세르비스를 타게 도와준 경찰 아저씨와 이야기를 좀 했는데, 아무래도 관광지에서 외국인들을 많이 보고 그들의 개방적인 문화를 접하다 보니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에 대해 약간은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제대로 정확히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nbsp;이집트에서는 결혼 전 연애는 생각도 할 수 없고 여자들은 스무살 정도가 되면 바로 결혼을 해 스물 한 살이 되면 바로 애 낳고, 그 다음 해에 또 애 낳고... 한국에서는 연애를 할 수 있냐고도 묻고 이것 저것 이집트와 한국의 다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택시를 탈 것이냐 아니면 세르비스를 탈 것이냐 물어서 나는 좀 싼 세르비스를 타고 싶다고 했더니, 왜 모든 동양인들은 다 세르비스를 타고 유럽인들은 택시를 타냐고 다시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글쎄... 그 때 당시에는 당황을 해서 아마 동양인들은 배낭 여행으로 오는 경우가 많이 금전적 여유가 많지 않아 그러는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br><br>&nbsp;&nbsp;&nbsp;&nbsp; 이집트 사람들의 동양인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는 않다. 룩소르에 엘 살람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좀 쉰 다음에 나일강 옆을 여유롭게 산책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밖으로 나섰다. 강 가 근처에 조금 가까이 가자마자 수많은 마차 인부들과 펠루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따라붙어 싸게 좋은 가격으로 해 줄테니 한 번 타보라고 계속 호객행위를 해댔다. 나는 굳이 뭘 타기보다는 그저 걷고 싶은 생각에 계속 달려드는 마차 인부들에게 "No, thank you."라고 연신 대답했는데, 그 중 한 끈질긴 사람이 아예 마차에서 내려서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면서 거의 화를 내면서 계속 $2에 타라고&nbsp;강요를 했다. 그래서 나도 약간 기분이 나빠져 조금은 단호하게 "NO!"라고 말했다. 그랬더니&nbsp;그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Why do all your people say 'NO'?"라고 물었다. 순간 불현듯 내 머리 속을 스치는 많은 영상들.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이집트 현지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 그리고 그 편견에서 우러나오는&nbsp;이 곳 사람들에 대한 배낭 여행객들의&nbsp;대우,&nbsp;특히나 조금 전 만났던 일본인이 레스토랑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 모하메드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대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게 휙 돌아서 갔었는지. 절대 바가지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의심해 현지인들을 마음을 통할 수 있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라기 보다는 그저 금전적 대가에 대한&nbsp;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혹 한&nbsp;눈을 팔면 뒤통수를 칠 수 있는&nbsp;사람들 정도로 취급하는 일본인 혹은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에게 질렸을지도 모른다.<br><br>&nbsp;&nbsp;&nbsp;&nbsp; 물론 모든 배낭 여행객들이 이런 것은 아니다. 이집트 지역을 전전하며 들은 이야기들 중 사막에 투어를 갔다가 안내를 해 주던 가이드와 사랑에 빠져 결국 결혼식을 올리고&nbsp;지금 바하리야 오아시스에 머무르며 9개월 된 예쁜 아기를 키우는 분도 계시고, 또 다른 한국 여자분 역시 이집트 현지인과의 오랜 연애 끝에 이 사람이 정말 진국이란 결론에 스무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시는 분도 계신다. 룩소르에서도 모하메드는 주변에 이집트 사람과 결혼해 그냥 이 곳에 정착을 한 유럽인들도 꽤 많다고 말해주었다. <br><br>&nbsp;&nbsp;&nbsp;&nbsp; 솔직히 이집트 보다는 훨씬 더 깨끗하고 좋은 환경을 갖춘 유럽이나 우리 나라에서&nbsp;어떻게 그 곳 사람과 결혼해 그 지역에 아예 눌러 앉아 살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 처음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문화나 음식도 너무 안 맞을 것 같고 위생 관념도 별로 없는 이 나라에서... 정말 사랑은 국경이 없는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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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Fri, 25 Jul 2008 12:52:53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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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이집트 여행기 (1)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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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nbsp;&nbsp;&nbsp;&nbsp; 10일&nbsp;간의 이집트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혼자 훌쩍 떠나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뚝 떨어져 보니 왠지 모를 해방감이 들었다. 완전히&nbsp;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내가 알지 못하던 환경에 나 자신을 던지는 것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물론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워 몸은 신선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후련했다.) 그러나 어떤 곳에 가서 어떤 멋있는 건축물을 봤으며, 또 어느 지역에 가 이런 멋진 광경을 봤다라는 내용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 타지에 여행을 가서 가장 인상깊게 느꼈던 것은 그 모든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현재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br><br>&nbsp;&nbsp;&nbsp;&nbsp; 여행을 가기 전 나의 이집트 인에 대한 생각은 '현지인=대부분 사기꾼'이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저기 책자라던가 이미 나보다 앞서서 갔다온 여행자들의 인터넷 블로그에서 바쿠시시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어이없는 만행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된지라&nbsp;그런 편견을 가질&nbsp;수&nbsp;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디서는 어떤 사람을 조심해라, 이런 식으로 관광객에게 접근을 해 나중에 바가지를 씌운다, 낙타에서 혼자 내리지 못하는 점을 이용해 원하는 돈을 주지 않으면 내려주지 않는다 등 별 희한한 사연들이 다 있었다. 그랬으니&nbsp;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 본적이 없는 여자애가 뭐든지 값이 정해져 있는 유럽 같은 선진국도 아니고 저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 있는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 홀로 살아남으려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무도 믿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nbsp;<br><br>&nbsp;&nbsp;&nbsp;&nbsp; 하지만 결국 난&nbsp;첫 날&nbsp;간신히 혼자 힘으로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한 후 바로 그&nbsp;염려하던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여러 번 했건만, 그&nbsp;모든 읽은 자료와&nbsp;충고들은 다 잊은 채&nbsp;차가 쌩쌩 달리는&nbsp;길을 같이 건너 준 한&nbsp;40대 현지인의 친절에 넘어가&nbsp;질질 끌려다니면서 여행 일주일치 비용을 한꺼번에 다&nbsp;쓰고 그 사람 어머니네 집까지 따라가게 되었다.&nbsp;처음의 한 말과 다르게 행동하고&nbsp;점점&nbsp;자신이 한 말을 바꾸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아, 이게&nbsp;바로&nbsp;그 사기이구나.'라는 생각이 듣고는 나 나름대로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래봤자 4시간 정도 더 끌려다녔지만.;; 결국은 기자 피라미드에서 낙타를 타고 그 사람 가게에 가서 물건을 좀 사주느라고 돈을 왕창&nbsp;썼다.&nbsp;더구나&nbsp;카이로에 있는 한국인 운영&nbsp;숙소에 전화를 하지 못했더라면 다시 그 사람 어머니네 집에 끌려갔을지도 모른다.&nbsp;그래서&nbsp;그 날 밤에는 정말 기가 막히고 앞으로 여행이 막막해서 화가 나서 잠을&nbsp;못 이룰 지경이었다.<br><br>&nbsp;&nbsp;&nbsp;&nbsp;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nbsp;비록 내가&nbsp;그 사람 때문에&nbsp;많은 돈을 쓰고&nbsp;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nbsp;자기&nbsp;어머니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집트 사람들의&nbsp;정말 일상적인 모습을 보지 못했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내가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를 데려간 그 유스리라는 사람&nbsp;집에는 어머니, 다운증후군이 있는 남동생, 이모, 조카 둘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적인 가정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nbsp;이집트에서 장애인이&nbsp;어떤 삶을 사는지 또한&nbsp;볼 수 있었다. (그 장애가 있는 남동생은 다른 식구들과 의사소통은&nbsp;잘 되지 않지만 사랑을&nbsp;많이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반 이집트 가정에서 먹는 음식을 대접을 받고 나 혼자 다녔으면 사먹지 않았을 매우 특이한 맛의 과일도 먹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고 합리화를 시키니 훨씬 더 마음이&nbsp;편해지고 앞으로의&nbsp;남은 9일도 희망적일 것이란 막연한&nbsp;기대감에 부푸는 것 같았다.<br><br>&nbsp;&nbsp;&nbsp;&nbsp; 그렇게 첫 날은 조금 아주 완전히 좋게만 보기도 또 그렇다고 아주 나쁘게만 보기도 어려운 희한한 경험을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이집트 사람들의 친절을 듬뿍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nbsp;이집트 사람들은&nbsp;아무래도 동양 여자를 좋아하는 편인 듯 싶었다. 동양 남자는 말고 여자만.&nbsp;햇볕 따가운&nbsp;카이로 시내를 낑낑대며 걸어다니고 있으면 지나가는 많은 이집트 인들은 웃는 얼굴로 "Welcome to Egypt"라 인사를 해주었다. 혹여나 길을 잃거나 방향을 잘 모를 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How can I go to ---?"라고 묻게되면 걸어가야 하는 경우는 손가락을 방향을 가르키며 친절하게 이 방향으로 가다가 길이 나오면 어느 쪽으로 돌고 등등 가르쳐 주었으며,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경우에는 버스 번호판이 아랍어로 씌여 읽을 수 없는 나를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같이 원하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가 버스가 도착을 하면 저 버스라고 타는 것을 도와주기까지&nbsp;했다. 이집트의 버스는 정류장에서 제대로 멈추지 않아 움직이는 버스를 알아서 타고 알아서 내려야&nbsp;했는데 나는 처음 이집트 버스를&nbsp;타는지라 제대로 못 올라탔기 때문이다.&nbsp;그렇게&nbsp;친절히 버스 태워준 그 분에게는 버스가&nbsp;털털거리며 떠나버려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br><br>&nbsp;&nbsp;&nbsp;&nbsp; 버스 안에서도 도대체 어디에서 내릴지 몰라 앞에 앉아있는 승객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nbsp;안타깝께도 그 사람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내 뒤 쪽에 타고 있던 대학생인 것처럼 보이던 두 청년이 자기들도 거기서 내린다고 같이 내리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또, 타흐리르 광장에서 내리자&nbsp;호텔에 가려고 하는 거냐고 물으면서&nbsp;힐튼 호텔을 가르켜서 내가&nbsp;좀 더 싼 호텔에 가고&nbsp;싶다고 했더니 한 사람이 또다시 손가락을 방향을 가르키며 길을 알려주려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그냥 같이 데려다주자고 했다. 그렇게 아주 우연히 카이로 시내 버스에서 만난 두 이집트인 청년은 싼 호텔이 많이 모인&nbsp;광장 중심가 부근까지 날 데려다 주고는 앞으로 여행 조심히 잘 하라며 인사를 한 후 자기들 갈 길을 갔다.&nbsp;<br><br>&nbsp;&nbsp;&nbsp;&nbsp; 또, 셋째날 바하리야 사막에서 카이로로 돌아온 후 나는 바로 밤기차로 룩소르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기자 역에 갔는데 모든 표가 다 팔렸다고 해서 다시 택시를 타고 람세스 역에 갔지만 그 날과 그 다음날까지 룩소르 행 기차표는 다 매진되어 있었다. 다음 여행지에 갈 교통편이 막혀버리자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그냥 플랫폼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혹시 다른 창구에 물어보면 없는 표가 갑자기 생기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희망에 다시 물어보았지만, 역시나 또 한 번의 실망뿐이었다. 그렇게 울상을 짓고 어긋난 계획을 자꾸 생각하며 앉아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제복을 입고 희끗희끗한 콧수염을 기른 경찰 아저씨가 나타났다. 무슨 문제가 있냐 물어서 룩소르행 기차표를 사고 싶은데 이미 다 표가 팔려서 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대답을 하자, 아주 자신있는 표정으로 갑자기 따라오라고 했다. 쫄래쫄래 한 가닥의 실마리 같은 희망의 빛줄기를 느끼면서 난 그 분을 따라갔는데 아까 방금 전까지 매표소에 온 것이 아닌가! 원래 줄을 서지 않는 이집트 현지인들을 배로 퉁퉁 밀어내면서 그 경찰관 아저씨는 나를 매표소 창구 앞으로 이끌었다. 일단 먼저 내가 '룩소르 행 기차표요'라고 말하게 한 뒤 당연히 따라나오는 '다 매진되었습니다'라는 판매원의 대답에 경찰아저씨는 쑐라쑐라 아랍어로 역정을 내면서 그 판매원에게&nbsp;'이 불쌍한&nbsp;아이에게&nbsp;없는 표라도 내놓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nbsp;나 혼자만을 위해&nbsp;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 다른&nbsp;승객들에게 피해는 주는 것 같고&nbsp;그 판매원에게는 협박이 통하는 것 같지 않자, 아저씨는&nbsp;다른 창구로 가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지만 방금 전&nbsp;한 판&nbsp;했던 그 판매원에게 들켜버렸다.&nbsp;결국 안되겠다 싶었던지 아저씨는 아예&nbsp;기차역 사무실 안으로 나를 데려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떵떵거리며 또다시 표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nbsp;물론 내가 아랍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직원이 다 체크 표시가 된 기차 좌석표를 그 경찰 아저씨 얼굴 앞에 흔들어 대는 것을 보면서 추측만 할 뿐이었다.<br><br>&nbsp;&nbsp;&nbsp;&nbsp; 그렇게 아마 한 시간도 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가끔 새로운 사람에게 '오늘 밤 룩소르 행 기차표요.'라고 소심하게 이야기하는 것과 계속 여기저기 나를 데리고 가는 경찰 아저씨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것, 그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결국은 정말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라는 진리를 깨닫고 아저씨는 표를 못 구해줘서 미안하다고&nbsp;내일 아침 일찍 다시 와보라고 하고는 장난스레 내일 살 때는 자기꺼 표까지 두 장 사 놓는 것 잊지 말라며 싱긋 웃고는 훌쩍 가버렸다. 결국 나는 그 다음 날 아침 기차역이 아니라 장거리 버스 터미널에 갔지만, 내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nbsp;최대의 친절을 베푼&nbsp;그&nbsp;아저씨는 내 삶에 있어서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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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4 Jul 2008 12:33:10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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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파리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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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br>&nbsp;&nbsp;&nbsp;&nbsp; 자려고 누웠는데 파리가 귓전에서 자꾸 왱왱거리는 통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읽고 있던 책을 던졌다. 그냥 화만 났을 뿐 살생의 의도는 전혀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파리는 벽에 납작쿵 눌려 죽어버렸다. 순간 밀려드는 죄책감에 기분이 암울해져 버렸지만 장렬히 전사한 파리의 사체를 휴지 더미에 묻어주었다. <br><br>2.<br>&nbsp;&nbsp;&nbsp;&nbsp; 내일이면 진짜 떠난다. 으휴~ 믿기지가 않는다. 그동안은&nbsp;머리를 쥐어 싸매며 가장 효율적으로 많은 것을 볼 수 있을지&nbsp;일정을 계획하고 그러느라 즐거웠는데 아무래도 내가 설레고 즐거웠던 이유는 여행 그 자체 보다는 빈둥빈둥 백수처럼 지내다가 뭔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 때문이었나보다. 내가 멍청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고 마음을 다잡고 뭔가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을 도피하고 바로 눈 앞에 닥쳐서 급하게 열을 올리며 어떤 것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간 동안은 참 즐거웠다.&nbsp;<br><br>&nbsp;&nbsp;&nbsp;&nbsp; 이틀 전까지는 그런 설렘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지만, 어제 오후부터는 정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말도 안 통하고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는 저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혼자 열흘이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으로 다가왔다. 그 때부터 난 공황 상태에 빠졌다. 난 아직 지렁이 글자로 쓴 숫자도 읽지 못하고 바쿠시시(이집트에서의 팁)에 대한 개념도 완전히 안 잡혀 있으며 야간 버스나 기차에서 어떻게 소매치기를 안 당하고 잠을 잘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nbsp;도착하면 잠을 잘 곳은 있겠지라고 마냥 맘 편하게 생각했지만 만약에 정말 잘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의문도 서서히 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패닉 상태에 돌입했다. 그런 상태로 난 저녁에 친구들과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꽤 오랫동안 이야기도 나누고 하게 되었는데 나의 이런 깊은 걱정과 근심을 외면하기 위해 오히려 난 완전 잘 다녀올 작정이란 듯 허세를 부렸다.<br><br>&nbsp;&nbsp;&nbsp;&nbsp; 친구들과 헤어진 후 학원에서 학교 기숙사로 다시 들어가는 동생을 바래다 주었는데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라 원래도 살갑지 못한 언니는&nbsp;더욱 더&nbsp;다정다감하게 대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하연이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자기가 졸업한 후에 놀러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등등의 계획을 바로 1년 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읊어대며 나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흠... <br><br>&nbsp;&nbsp;&nbsp;&nbsp; 집에 와서도 난 한참동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이미 사방으로 뿌려놓은 물이기에 다시 주워 담는 것은 완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씨잘데기없이 두려움에 질려 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자고 몇 번이고 다짐을 했건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결국 피곤함에 못 이겨 잠에 들었고...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도 나의 마음도 다시 밝아져 있었다. ^-^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짐만 싸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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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Journal</category>
		<pubDate>Mon, 07 Jul 2008 08:25:29 GMT</pubDate>
		<dc:creator>웅쌍</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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