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문득

 

1.
     정신없이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는 채 살다보니 어느새 나뭇잎이 점차 누런 주황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고 이미 바닥에는 푸실거리는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성큼성큼 지나가는 한 주 한 주가 모여 펄쩍 뛰어가는 한 달이 되고 나는 벌써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듯 이러한 모든 변화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늘 색깔을 확인하며 오늘은 옷을 얼마나 따뜻하게 입어야 할지 결정을 하고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운동장에서는 가쁜 숨을 내쉬며 공을 차고 있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들으면서 슬리퍼를 신어도 될지 아니면 운동화를 신어야 할지를 정하며 방을 나서면서는 힐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는 기숙사 사람들이 이미 학교에 갔는지를 확인한다. 그렇다고 내가 남의 방 맨날 힐끔거리며 훔쳐보는 건 아니다...;;

2.
     고요히 흐르고 있는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서서히 색깔을 바꾸어 가면서 흔들흔들 움직여대는 가로수 너머로 느긋한 강물이 반짝거리며 흐르고 그 옆으로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가벼운 걸음으로 사람들이 조깅을 한다. 뭉실뭉실 흘러가고 있는 배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바라보며 머리에 빠르게 스쳐가는 그림 조각들을 손에 움켜쥐려 하지만 결국은 그 조각들 또한 부서져가는 강물의 너울거림과 함께 흘려 보내버린다.

     시간이 모든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꾸는 것처럼, 어둠 또한 지저분한 것들을 다 숨겨버리고 아름다운 빛만을 남긴다. 캠브리지에서 보스톤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 서서 새카만 밤하늘과 새카만 강물, 그리고 도시의 불빛의 조합을 보고 있노라면 손가락을 뻣뻣하게 만드는 찬바람도 잊고 시선을 하염없이 까만 강물에 향하게 된다. 

3.
     어제는 서진이, 봉봉이, 존과 함께 뉴잉글랜드 수족관에 갔었다. 한국에서부터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 수족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정말 신기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많고 완전완전 귀여운 펭귄들도 있었다. 완전 신이 나서 폴짝폴짝 옆에서 폴짝거리며 신나하는 애기들과 함께 촐싹대면서 특이한 얼굴을 가진 물고기의 표정도 따라해보고 몸에 비해 너무 귀여운 지느러미를 가진 뚱뚱보 복어가 파닥거리는 것도 흉내내면서 정말 오랜만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러다 너무 동심에 세계로 돌아가버린 나머지 불가사리를 만지고 손을 닦는데 sanitizer을 못 짜서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자기 애기들 손에 짜주고 내 손에도 짜서 주셔버렸다. 덕분에 옆에 있던 친구가 꼬맹이라고 계속 놀려댔다.

4.
     AXO는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진다. 방금 전에 2학년인 한 자매와 함께 아침을 같이 먹고 들어왔는데 그냥 같이 있으면 편한 느낌이 많이 든다. 아직은 그다지 잘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길 가다가 마주쳐서 계단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사촌 언니나 오빠가 별로 없는 나에게 누군가의 동생이 된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곧 있으면 누가 나의 큰언니가 될지 알게 될텐데 벌써부터 기대가 많이 된다.

by 웅쌍 | 2008/10/13 02:22 | 미분류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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