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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며칠 전에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지금까지 블로그에 올렸던 포스팅들을 쭉 한번 다 훑어보았다. 사실 내가 직접 쓴 글을 열심히 읽어보았다기 보다는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이런 내용을 썼었구나'하고 기억하는 정도였지만. 2007년 9월 14일에 처음 올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147개를 썼는데 (이것까지 포함하면 148개) 나름 1년이 가까이 가는 동안 그다지 많이 쓰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맘때 쯤 해서는 거의 250개를 넘게 올렸을 줄 알았는데, 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었나보다. 

     졸업한 후에 지키기로 결심했던 일 중 하나가 매일 매일 포스팅을 하나씩은 꼭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계속 시간을 때우기만 하는 삶에서 하루마다 쓸 거리가 생기는 것은 좀 무리였던 것 같다. 쓸 거리를 만들기 위해 내가 노력을 하고 일부러 더 열심히 할 일을 찾았던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지나간 기록들을 다시 되돌아보니 재미있었다. 꼭 내가 쓴 내용이 아니라 그 글을 올릴 당시에 나에게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나면서 웃음이 났다. 갑자기 삘 받아서 올린 결혼 안 하겠다는 선전포고와 친구들의 당황스러운 패러디들(-_-;;), 친구와 서로 블로그에 훈훈한 댓글을 남기자고 약속했던 기억, 피자를 너무 먹고 싶어서 거의 구걸했던 일, 604호 친구들끼리 처음 간 강릉 바다 여행, 에세이가 안 써져서 너무 골치가 아파 올렸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은 에세이 로봇 포스팅, 첫 은주 디너와 바베큐 파티 때의 눈싸움, 이번에도 특별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툴툴거렸던 2007년 크리스마스, 어느 순간부터 간간이 출현하셨던 아직도 정체를 모르는 익명의 'MIT 재학생', 맨날 서로 더 싸이코 또라이라고 싸우던 컴퓨터 반, 그리고 간간이 폭로했던 욕쟁이 바보였던 나의 과거... 또, 학교를 떠난 후에는 간간이 만났던 사람들, 앞으로 남은 8개월을 보람차게 보낼 것이라 한껏 부풀었던 2008년 초반의 꿈과 희망(결국 뒤돌아보면... 뭘 했는지.;;), 많은 기억이 남는 중국, 태국, 필리핀, 이집트 여행...

     말투나 소재를 보면 그 때 나의 기분과 정신 상태가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고 (예를 들면, 공포의 SAT I 시험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영문학 수업으로 화살을 돌려 아무 죄 없는 문학 작품에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때론 핫소스를 꿀꺽꿀꺽 마시고 우주로 날아가고 싶었거나) 혹은 학교에서 그 때 누가 나한테 어떻게 말했었구나 혹은 뭐라고 놀렸었구나 등의 일 들이 다 생생히 기억난다. 캠코더로 동영상을 찍었던 것처럼. 보통 때는 일부러 기억을 하려고 해도 너무 많은 용량에서 뭘 꺼내야 할지 갈팡질팡 하다 결국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애.ㅠㅠ' 혹은 '벌써 기억이 가물거리며 사라지는건가..."하고 낙담을 했었는데.

     학교에서 나름 바쁘고 정신없었을 시기에 왜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블로그에 투자했냐 묻는다면, 답은 아마도 원서를 쓰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있기 또한 싫어서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에세이를 써야하는 현실을 '순진 쌤이 쓰라고 하셨으니까.'라는 구차한 핑계로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도. 하지만 시간이 흘러흘러 지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으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머리 속으로나마 잠깐 갔다올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도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 촤르르 펼쳐지더라도 꼭 이렇게 내 일상 생활을 기록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ㅋㅋ

     아, 그리고 블로그를 생각지도 않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순진쌤 진짜 감사해요♥

by 웅쌍 | 2008/08/05 15:52 | Journal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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